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라 왕조 (문단 편집) === 정치 === 팔라 왕조는 [[군주제]]였으며, 지역 귀족들이 국왕을 선거하는 [[선거군주제]]로 시작했으나 고팔라의 왕권 강화로 인해 그 뒤로는 기본적으로 장자 상속제를 따랐다. 팔라 왕조가 존속하던 시기의 인도 국가들은 오히려 고대 시대의 [[마우리아 제국]] 같은 국가보다 지역 장악력이 저하되어, 팔라 왕조는 유럽의 [[봉건제]]와 유사한 형식으로 지방을 통치했다. 팔라 황제는 [[비하르]]와 [[벵골]] 서부를 직접 통치했으며, 그 외의 지역에는 행정 구역을 설정하고 지역 귀족을 그대로 두어 각 행정 구역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행정구역의 가장 큰 단위는 북티(주)였으며, 북티 밑에는 비샤야(군)와 만달라(구)가 있었고 그 밑으로 칸달라, 바가, 아브리티, 차투라카, 파투카 등의 마을 규모 행정구역이 있었다. 지방 행정구역을 지배하는 지역 귀족들은 완전히 봉신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고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가진 이들도 있었으며 명목상으로만 팔라 왕조를 받들고 실제로는 독립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지역 귀족들을 사만타라 부르며, 특히 벵골 지역의 귀족 사회를 사만타차크라라 불렀다. 사만타차크라 내의 귀족들은 서로 밀접하게 교류 혹은 적대했으며 황제는 사만타차크라의 지지를 받아야 국정을 수월히 풀어나갈 수 있었다. 제국이 약화될 수록 사만타차크라의 지지를 얻는 것은 중요해졌다. 대표적으로 바렌드라 반란에서, 사만타차크라가 디브야의 편을 들자 마히팔라 2세 황제는 순식간에 몰락했고 반대로 사만타차크라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한 라마팔라 황제는 바렌드라 왕국을 무너뜨렸다. 제국 중앙 정부는 철저히 황제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황제 밑에 재상이 있었다. 전후의 인도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재상은 재상 가문이 따로 있어 장기간 독점하는 구조였다. 대표적으로 가르가 가문이 100년 가까이 재상직을 맡았으며 그 외에 다르바파니, 소메슈와르, 케다미스라, 바타 구라비미스라 등의 가문들이 재상직을 맡은 기록이 있다. 여러 동판 기록에 많은 중앙 정부와 지방 귀족들의 관직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팔라 왕조의 중앙 정부는 상당히 복잡하고 고도화되어 있었다. 풍요로운 갠지스 강 하류를 지배한 국가답게 [[재무부]]가 강력하여, 농업 담당 관리와 상업 담당 관리가 분리되어 있었으며 황실 직속의 농장과 목장 역시 많아 이들을 관리하는 조직이 따로 있었다. 농업 담당 관리는 토지 측량, 부동산 매매, 경작 진흥 정책 실행, 수리시설 관리 등을 하였다. 상업 담당 관리는 갠지스 강을 중심으로 통행세 징수, 관세 징수, 시장 감찰 등을 하였다. 또한 사법 조직이 따로 있어 법원이 있었고 그 밑으로 경찰 조직과 형벌 담당 조직이 있었다. 콜라라는 이름의 황제 직속 첩보 조직도 활동했다. 외교적으로 재상과 별개로 외무장관이 있었고 팔라 주변 각국에 외교사절을 고정적으로 배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